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발매되었던 앨범이 가득한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 중 유일하게 눈에 띄는 한 앨범이 있었다. 바로 2015년에 발매한 이센스의 The Anecdote였다.
나의 2015년은 한창 군 복무를 하던 시절이다. 당시 군대는 휴대폰을 사용하지 못하여 음악을 듣는 유일한 방법은 CD플레이어를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앨범의 수록된 곡들을 취향별로 골라듣기보다는 앨범 전체를 곱씹으면서 들었다.
The Anecdote의 첫 트랙 '주사위'를 듣자마자 이센스의 비트 메이커가 누군지 굉장히 궁금했다. 지금까지 발매한 다른 이센스의 곡보다 이센스의 목소리와 감성에 너무 잘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이센스의 과거와 감성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가까운 지인일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트메이커는 덴마크 프로듀서 '다니엘 오비 클라인(Daniel Obi Klein)'이라는 사람이었다. 원 프로듀서로 전곡을 제작하면서 앨범 전체에 대한 개연성과 무드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느낌이었다.
The Anecdote의 전반적인 이야기는 앨범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과거 이센스가 걸어온 삶을 담담하게 랩으로 뱉어낸다. 사실, 사람들은 본인의 치부라고 생각하는 과거는 마음 깊숙이 담아 놓지 남들에게 들어내지 않는다. 하지만 The Anecdote의 곡에는 이센스의 삶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죽음, 본인의 방황하던 청소년기, 랩을 시작하던 청춘, 현재의 삶 등이 담겨있다. 이는 우리 모두가 겪어온 혹은 앞으로 겪을 수도 있는 이야기이기에 모두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했다.
앨범 커버는 손수건에 이센스의 본명 강민호의 이니셜 K.M.H가 적혀 있다. 여기에도 담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손수건은 보통 눈물을 닦는 용도로 사용한다. 이니셜 K.M.H는 실로 누군가가 직접 새겨 준 것으로 아마 어머니라고 생각된다. 그렇기에 순탄치 않았던 과거의 삶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앨범은 진행될수록 점점 더 깊어지는 감정선을 드러낸다. 타이틀곡 'The Anecdote'의 가사 속을 살펴보면 "우리 민호 이제 집에 하나 있는 남자네" , "이제는 결혼한 누나들의 가족사진을 본다면 아들과 딸들의 아들과 딸들을 본다면" 등 곱씹어 생각하게 만드는 구절이 굉장히 많다.
The Anecdote는 앨범의 전체적인 서사와 삶을 관통하는 가사, 유려한 이센스의 랩 스킬 등 한국 대중음악 100대 명반에 들어갈 만한 앨범이라고 생각한다. 안 들어 보신 분이 있다면 조용히 첫 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들어보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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